12월 31일은 격투팬들에게는 소위 대목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양대 격투 이벤트가 모두 한 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대형 이벤트를 앞다투어 열기 때문. K-1과 프라이드 FC의 연말 올스타 이벤트 격인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남제(男祭) 3'가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시청률 정면 대결을 펼친다.
잘 알려진 대로 연말의 일본 TV는 NHK의 홍백가합전이라는 연예 프로그램이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세밑문화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십수년 간 단일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늘 40%대를 넘나 들었다니 놀라운 수치다. 말그대로 '문화'로 자리 잡은 홍백가합전의 시청율이 작년 연말에는 사상 최초로 40% 아래로 떨어지는 대 사건이 있었다. 같은 시간대의 K-1 다이너마이트가 격투 프로그램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하며 20.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홍백가합전의 시청자를 빼앗아 왔기 때문. NHK의 쇼니 회장의 퇴진에 K-1이 한 몫 거들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 였다.
K-1 주관사인 FEG의 다니가와 프로듀서는 "올해야말로 홍백가합전의 아성을 무너뜨릴 기회"라며 시청율 40%를 호언장담하고 있다. 다니가와가 이런 언급의 배경에는 마에다 아키라가 이끄는 HERO'S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연말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쇼적인 요소가 강조되온 다이너마이트!!의 대회 특성상 상대적으로 MMA 팬들로부터는 외면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ROMANEX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연말이면 꼭 K-1 정상급 파이터들에게 오픈 핑거 글러브를 끼우고 바닥을 뒹굴게 하는 해괴망측한 촌극을 연출하여 빈축을 샀던 일들을 감안해 보면, 정통 MMA 파이터들이 즐비한 HERO'S 선수진의 가세는 K-1이라는 거대한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HERO'S의 중심에는 일본인들의 각별한 애정을 받고 있는 '신의 아들' 야마모토 노리후미가 있다. 작년 다이너마이트!!의 최고 시청율 기록에 일등공신이었던 '키드'는 이번 다이너마이트에서 또 한명의 인기 파이터 스도 겐키를 상대로 생애 첫 타이틀에 도전한다. 작년의 마사토 전 같지는 않겠지만 일본 격투팬들에게는 반론의 여지없는 확실한 흥행 카드이다.
키드의 HERO'S 타이틀 매치 외에도 눈에 띄는 매치가 많다.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UFC 초대 챔피언 호이스 그레이시를 맞는다. 호이스가 전성기를 지난 노장 파이터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계 종합격투 이벤트의 중심이 있었던 이 그레이시 사내를 우습게 볼 수 있는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호이스가 프라이드 시절부터 다카다 노부히코, 사쿠라바 카즈시, 요시다 히데히코, 아케보노 등 일본 격투의 자존심이라 불릴 만한 상대들과 싸워 왔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는 추성훈-호이스 전을 이번 대회의 메인 이벤트로 여기는 사람들도 여럿 있을 정도.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이번 대회 최고의 매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키드와 추성훈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이때까지 발표된 매치들 모두 다분히 쇼 적인 요소가 강하다. 대표적인 매치가 아케보노와 카쿠다 주심의 대진 카드. 아케보노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바비 오르건과 붙게 되었다. 작년 다이너마이트에 출전해 시릴 아비디를 꺽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업은 연예인. 주로 바보 캐릭터를 소화하는 인기 개그맨이다. 한편 '올해 44세인 '낭만 파이터' 카쿠다 노부아키는 지난 서울대회 이후 또 다시 링위에 오른다. 상대는 지난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최무배를 제압한 프레데터. 신장 197cm, 몸무게 138kg의 거구 프로레슬러이다. 어찌되었든 FEG와 주관방송사인 TBS의 시청율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홍만의 매치가 아직 미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쇼적인 요소가 강한 상대보다는 차라리 정상급 선수와 큰 무대에서 붙어 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밥 샙은 최홍만이 고사하고 있고, 피터 아츠는 최홍만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으니, 밴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저래 일본 내 격투 시장에서 라이벌 관계일 수 밖에 없는 프라이드 FC의 연말준비는 더욱 분주해 보인다. 프라이드의 현 챔피언들이 총 출동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 강판 스타들을 총 출동시켰다. 작년 남제2가 사실상 다이너마이트에 더블스코어 패배를 기록했기 때문. 멋진 오프닝 쇼와 최고의 매치업을 감안한다면 시청률 수치상의 차이를 넘어서 참패를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K-1에 히어로스가 있다면, 프라이드에는 라이트급, 웰터급 그랑프리 결승전이 있다. 키드 만큼은 아니라해도 고미 다카노리가 연승행진으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으며, 조연 사쿠라이 마하는 단연 히어로스를 앞선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솔직히 '키드'의 생애 첫 타이틀 도전과 맞대결을 펼치기에는 조금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프라이드를 이끌고 있는 DSE가 '키드'의 다이너마이트!!를 견제하기 위해 꺼낸 카드는 사실 고미-'마하'전보다 요시다-오가와 전이라는 것이 일본 내 전문가들의 하나 같은 평가이다.
지난 다이너마이트!!에서 순간시청율 37%라는 경이적인 시청율을 기록한 순간은 '키드'와 마사토의 일본인 최강자간 대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 이와 같은 구도로 '불사조 유도왕' 요시다와 '원조 유도왕' 오가와와의 매치가 이번 남제의 시청률 기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이 두선수간의 인연은 본 칼럼 '불사조 유도왕' 요시다 히데히코' 편(클릭)을 참고할 것)
요시다-오가와 외에도 '일본인 최강'이라는 기치아래 맞선 곤도 유키 대 나카무라 카즈히로, 그리고 타키모토 마코토 대 키쿠타 사나에의 대결까지 일본인 간의 대결이 총 세경기나 배정되어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어느 한 경기도 지나치지 못하는 카드 들이다.
여기다가 효도르와 실바라는 확실한 챔피언 카드에다가 크로캅과 마크 헌트라는 최고 인기 파이터간의 맞대결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확실히 매치업에 있어서는 프라이드가 단연 앞서 보인다. 다이너마이트!!의 쇼적인 요소에 맞서 진지한 실력 대 실력의 대결이라는 격투기의 본질적인 요소로 맞대응하겠다는 DSE의 배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대회의 부제 'ITADAKI'(정상, Best Bout)에서도 그런 의지를 엿볼수 있다.
이번 연말에는 누가 시청율 대전에서 이길 것인가? K-1과 프라이드의 물리적인 차이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남제가 다이너마이트를 쉽게 넘어서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단, 프라이드의 대진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그 격차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군다나, 격투 수퍼스타 마사토가 빠진 상태라면 K-1 작년같은 프리미엄은 얻기 어렵다는 것. 프라이드의 약진이 조심스럽게 예상된다. 국내 상황은 최홍만의 출전이 확정되어 있는 이상 다이너마이트!!의 압승이 예상된다.
누가 시청률 전쟁에서 이기든 사실 격투팬들에게는 둘 중 하나는 녹화해서 보거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봐여하는 귀찮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양 단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좀 더 멋진 경기를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 있는 문제인 듯 하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양 단체의 연말 이벤트에 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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