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대회는 K-1 WGP의 일종의 시즌개막전이다. 겨울 내내 비교적 긴 기간 훈련에 열중한 선수들의 업그레이드 된 부분을 집중 점검하는 동시에, 새로 발굴한 새 얼굴들의 기량을 확인하는 의미가 강하다. 격투스포츠계의 비수기나 다름없는 긴긴 겨울 시즌을 참고 기다린 격투팬들에게는 두말할 나위없이 반가운 무대이다.

이번 요코하마 대회는 비록 지역예선인 그랑프리로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슈퍼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중심으로 헤비급 챔프의 검증전, 그리고 재기넘치는 신인급 선수들을 포진 시켜 시즌 개막전으로서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뚜겅을 열고 본 이번 요코하마 대회는 K-1의 지독하게도 고질적인 문제들만 고스란히 드러나 격투팬들의 뚜겅이 열리게 했을 뿐이다.

K-1이 온글러브 입식타격의 최도 수준의 무대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격투 스포츠 이벤트로 명망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커진 덩치 만큼, 혹은 이에 쏠린 시선의 크기만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감히 K-1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위기의식은 사실 격투 관계자라면 누구도 꺼내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공공연한 비밀 수준도 못 되었다.

이런 사실은 유감없이 증명해주는 사건이 바로 요코하마 전날 대회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불거져 나왔다. K-1의 주관방송사인 후지TV의 관계자 단 한마디로 K-1의 위기에 대해 언급한 것.

"솔직히 말해, K-1의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야구나 축구 등 메이저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취약하다 못해 미약한 수준은 K-1을 그나마 지탱해주는 원동력은 바로 TV 중계이다. 매 이벤트의 메인 스폰서는 물론 각 선수들의 크고작은 스폰서십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곧 K-1의 위기로 직결된다는 의미이다.

이번 요코하마 대회는 이런 K-1의 위기상황을 가감없이 여실히 드러낸 것은 물론, 그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하는 지 또한 K-1측에게 숙제로 준 대회였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K-1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느끼시는지... 현재의 K-1이라면 치명적인 문제점이 여럿있다. 이번 요코하마 대회를 본 격투팬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하나쯤은 눈치 채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미 쉴트라는 전대 미문의 언터쳐블 챔피언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건재'를 다시한번 과시했으며, 그나마 K-1을 지탱하던 레이 세포로 대표되는 올드보이들은 이제 정상권에서 멀어졌음을 만천하에 다시한번 드러냈다. 쟁쟁한 신진급 선수들이라고 발굴하여 올린 파이터들은 여지없이 함량미달로 K-1의 선수발굴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 짜증을 더했을 뿐이다.(마에다 케이지로의 마이티 모 전에서 보여준 '추태'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주최측에서 회심의 카드로 꺼내든 '극진'카드도 그 명성에 오히려 흠집만을 냈을 뿐이다. 고질적인 자국 선수(일본)들에 대한 암묵적인 파격지원은 이제 도저히 참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선수들의 '지지 않기 위한' 클린치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불러 일으키키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꼭 프로격투 스포츠계가 아니더라도 현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이렇게 까지 존경받지 못하는 챔피언이 다시 있을까? 최고의 자리에 군림한 챔피언이 가장 천대받는 기현상이 지금 현재 K-1에 일어나고 있는 첫번째 위기의 실체이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 챔피언... 최고의 자리에서 그에게 도전하는 모든 강력한 도전자들과, 그 자리를 꿈으로 여기고 도전을 시작하는 신진선수 들에게 까지... 거의 모든 챔피언은 늘 '위대하다'는 것이 과연 선입견일까?

K-1 월드 그랑프리 3연속 패자인 세미 쉴트. 우리가 K-1의 전설적인 챔피언으로 기억하는 모든 격투가들도 이뤄내지 못한 실로 엄청난 업적이다. K-1의 WGP의 독특한 원데이 토너먼트 방식을 생각하면 사실 쉴트의 캐리어는 말그대로 말이 안되는 것이다. 아마도 단언컨데 K-1에서 앞으로 이와같은 업적을 이루어낼 가능성이 남아있는 선수는 사실 내가 아는 이름중에는 없다.

문제는 이런 실로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K-1의 모든 관계자들은 물론 격투팬들까지도 진심어린 성원을 보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의 역사에 길이남을만한 승리의 업적이 이어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K-1 전체를 위기의 수렁텅이로 몰아넣은게 아닌가 싶다.

존경받지 못하는 챔피언...
강력하지만 감동을 주지는 않는...
늘 승리하지만 늘 박수받지는 못하는...
마지막으로 링위에 남은 자에게 늘 승리의 찬가였던 'We are the champion'을 쓸쓸하게 만드는...

이번 요코하마 대회에서도 여지없이 이런 역설의 상황이 연출되며 현재 K-1의 가장 큰 위기를 대변했다.

어떤면에서 마크 헌트는 일종의 구세주였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넘은 파이팅을 이미 한차례 증명했던 그였기에, 헌트의 가공할만한 위력의 펀치와 한계를 드러낸 적이 없었던 맷집으로 골치덩이 챔피언을 끌어내리고 혁명을 완수하게 해줄 무엇인가가 확실히 그에게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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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헌트의 참패. 쉴트의 백스핀킥 한방에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격투팬들의 기대를도 함께 무너졌지만, 사실 이미 쉴트의 '거리' 안으로 헌트가 다가갈 수 조차 없다는 것을 이미 눈썰미 있는 격투팬들은 경기 초반에 이미 간파했을 정도. 더군다나 마지막 백스핀킥은 헌트 위치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리 세포의 부메랑 훅을 볼살로 막는 괴인이라고 해도 복부에 적중된 킥을 버티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최후의 보루였던 헌트 마저 무너지자 격투 전문가들 조차도 조심스럽게 최홍만에 슬그머니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쉴트의 강함이 사이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아는 사람들 마저도 최홍만의 사이즈 외에는 대안으로 제시할만 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솔직해지자. 현재의 최홍만의 스피드와 펀치 테크닉으로는 절대 쉴트에 닿을 수 없다. 이성을 잃은 주최측과 맹목적인 자국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 땅에서 1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태워와서 곧바로 링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로서는 다시는 그런 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쉴트에 대해 이제 K-1이 보유한 재원을 활용하여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이제 무모한 짓이다. 오히려 쉴트를 봉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현재로서는 룰의 개정으로 통해 강제적으로 발란스를 맞추는 방안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 과거 프라이드FC에서 사용했던 핸디캡 룰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다. 프라이드FC에서는 두 선수의 체중차가 많이 날 경우, 그라운드 상태에서는 니킥 금지 등 특별룰을 선택적용할 수 있었다.

체중이라는 절대적인 물리적 차이를 인정하고 물리적인 우위를 제한하는 룰인데, 입식타격의 '거리'라는 물리적 차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신장 20cm 혹은 리치 15cm 이상 차이날 경우 니킥 혹은 로우킥을 제안하는 방식이면 어떨까? 물론 정교한 룰 적용에 대해 충분히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해야 하겠지만, 다년간의(?) 쉴트의 멋대가리 없는 파이팅을 보면서 늘 생각했었던 것은 '과연 무릎공격이 없이도 강할까?'였다.

실제로 쉴트의 업그레이드 된 니킥은 쉴트의 공격 컴비네이션을 마무리 짓는 핵심적인 패턴이다. 원투 스트레이트로 시작되어 로우킥으로 마무리하는 듯 하다가, 상대가 조금이라도 중심을 흐트리면 여지없이 니킥을 올린다. 대부분의 상대가 쉴트보다 훨씬 거리가 짧은 상황에서 보통의 상대 보다도 훨씬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하여 안으로 파고들어여만 유효타격부위에 공격을 성공시킬수 있는데, 이런 상황은 쉴트의 안면까지 한번에 올라오는 니킥을 고려하면 성공율이 극히 낮을 수 밖에 없다. 니킥 자체로도 사실 심리적으로 매우 위협적일 수 밖에 없는데, 쉴트의 경우는 높이까지 더해 이런 위협은 배가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실 이제까지 쉴트와 싸운 상대들(최홍만을 제외하고) 모두 오히려 핸디캡을  않고 싸운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쉴트에게 핸디캡을 주어 상대성에서 오는 물리적인 불균형을 어느정도 해소하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쉴트가 만일 이런 핸디캡을 안고서도 3연속 wGP재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면 우리는 이렇게 까지 그를 천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쉴트의 강력함이 물론, 리치와 신장에서만 나온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 앞서 최홍만을 언급하면서 함께 이야기 했던 부분이다. 쉴트의 탄탄한 기본기에 철저히 스트레이트성 펀치 공격. 철저한 거리계산, 그리고 조심스러운 경기운영 등 쉴트의 강함은 사실 이 지면으로 부족할 정도다. 
실제로 쉴트가 현재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신장이 190cm 대에 100kg 수준이라고 가정해도 쉽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의견이다. 물론 인기는 없었을 것이지만...

모두에 언급했던 K-1의 위기는 세미 쉴트의 독주만은 아니다. 화끈한 플레이에 적절히 탄력적이지 않고 승패만을 중시하는 보상 시스템이라든지, 정교한 룰세팅과 이에대한 엄격한 적용(특히 클린치에 대한...), 그리고 자국시장의 흥행을 보장하기 어려운 체급체계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 처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쉴트 한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자고 이야기를 꺼낸것은 아니다. 하지만 챔피언의 자리에 존경과 의의를 더하는 것이 K-1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더이상 쉴트의 머리위로 흩날리는 꽃가루에 박수와 함성이 없는 가슴아픈 풍경으로 K-1을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이 글을 읽는 한분 한분의 격투팬들과 FEG의 관계자들 중에 단 한사람에게라도 공감을 얻어내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는 주최측과 격투팬들에게 작은 단초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챔피언의 위대한 업적에 진심어른 박수를 보낼수 있기만을... 더 나아가 누구에게나 K-1의 챔피언이 존경받는 챔피언을 가슴에 담게 되기를, 격투로망의 작은 제안이 그렇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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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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